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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타의 역사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0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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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9042

 10) 기타의 역사

 

 



 

  기타의 기원을 BC 3700년 경으로 보고 있다.

  이 시대의 이트 왕묘의 벽화에 기타를 닮은 발현악기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에 그 근거를 둔다.

  사가에 따라서는 BC 1400년 경의 유적에서 발견된
  네페르(Nefer), 혹은 오오드(Oud)로 불리우는 악기를
  기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이 악기가 이미 기타의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된 fret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악기들은 다른 나라들로 파급되어 AD 8C경에는
  아라비아류트(arabia lute)로 불리우는 하나의 완전한 악기로 완성된다. 

  이것이 711년 사라센의 스페인 침공과 더불어 스페인에 도입된다.
  그런데, 그 당시의 스페인에는 이미 라틴풍의 기타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악기는 고대 그리이스의 키타라(Kithara)(註1)가
  발전한 것으로 로마인에 거쳐 전래되었다.

  이상의 두 악기(Arabia Lute, 라틴풍의 기타)가 근대 기타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이들이 통일, 개량되어 전 유럽에 보급 되었던 것이다.



 

  (註1) 키타라 : 고대 그리이스의 발현악기 나무로 만든 공명통과
  2개의 팔과 횡목으로 되어 있으며 현의 수효는 5개(BC 8C),
  7개(BC 7C), 11개(BC 5C)등이 있다.

  지판은 없으나 현의 아래끝을 눌러서 음, 음, 1음을 울릴 수 있다.
  16 - 18C 전반 이 시대에 있어서 비엘라, 류트가 널리 통용된다.

  비엘라는 스페인에서 주로 이용되던 악기로, 위에서
  나왔던 '라틴풍의 기타'가 개량 발전된 것이다.

  이 악기는 현재의 기타와 비슷하게 허리가 들어갔고,
  가표면판은 평평했으며, 네크가 짧은 4선 악기였다.

  류트는 유럽대륙에 주로 이용되었다.
  이는 아라비아류트(註2)가 발전한 것이다.

 



  (註2) 아라비아류트: 이슬람의 스페인 침공 때 전래된 후
  발전한 것으로 타원형의 공명통이 있고 여기에 연결된
  네크에 평행으로 이어진 줄을 퉁겨 소리를 낸다.

  16-7C 유럽에서 사용되던 류트는, 줄감개집이 지판 뒷쪽으로
  구부려져 있고 앞판에 울림구멍이 있고 복현이며 프렛이 있다. 

  스페인의 비엘라는 16C 후반에, 유럽대륙의 류트는
  17C초반에 이르러 점차 쇠퇴하는데 그 원인은 당시 출현한
  바이올린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비센테 에스피넬과 환 칼로스아마트 등은
  악기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량시켰다.

  에스피넬은 5현 기타를 확립시켰고, 또 아마트는 이 기타를
  스페인 전역에 보급하였으며 조율도 현재와 별차이없이 확정시켰다.

  17C의 대표적 인물로는 프란시스코 코르베타(F.Corbetta), 
  가스파르 산스(G.Sans), 로베르트 데 비제(R. de Vise )등이다,
  특히 코르베타는 스페인 기타를 전 유럽에 보급하였다.

 



  18C 후반 - 19C 전반


  18C 후반에 여섯줄의 기타가 생겨났다.
  이 시대는 기타의 황금기라고 할 만큼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나왔다.

  그 중 특히 페르난드 소르(F.Sor)는 많은 명작을 남김으로써,
  <기타의 베에토벤>으로 불리운다.

그의 작품 중  [오페라 마적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대 독주곡],
    op.22와 25의 소나타, 미뉴에트집 등은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의 연습곡집은 음악적, 교육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손톱으로 줄을 퉁기지 않고 손가락 끝의 실로 줄을
  퉁기는 주법을 사용하였는데, 이 것으로 실내악에 적합한
  기타의 특징이 잘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대 기타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마우로 줄리아니(Giuliani, Mauro)가 있다.

  이탈리아 기타 음악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줄리아니는,
  당시 런던에서 발간된 잡지이름이 그의 이름을 딴 '줄리아니아드'였을
  정도로 연주자 로서 명성을 누렸다.
  그는 연주뿐아니라 작곡에서도 정력가였다.

  작품번호가 붙은 150편의 작품과 작품번호가 없는
  70편을 비롯해 많은 곡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기타협주곡 작품30번 A장조]로서
  잘 정제된 합리성, 균형미를 나타낸다.

  그외에도 디오니소스 아구아도(D.Aguado),
  페르난도 카룰리(F.Carulli),가 마테오 카르캇시(M.Carcassi)등
  처음 기타에 입문한 사람들이 금방 접하게 되는 연습곡집]의 저자들이 있다.

 



  19C 중 - 후기


  18C에 줄리아니, 아구아도, 소르, 카룰리 등의 출현으로
  황금기를 누렸던 기타 음악은 19C후반에 접어들며
  너무나 일반화되어 고도의 예술성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춤과 노래의 반주음악으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 기타 음악의 황금기였던 18C에서도 대부분의 가치있는
  작품은 연주가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만든 작품들이었다.

  이것은 19C후기부터 현재까지 기타를 연주하지 못하는
  유명한 작곡가들이 guitar곡을 작곡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대 기타 음악의 개척자'라 불리우는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 rrega)는
  이러한 어려움들의 해결점을 제시하며, 현대에 기타가 하나의
  연주악기로서의 위치까지 나아가는데 기반을 형성하였다.

  그는 여러 다른 각도에서 주법과 소리를 연구하여
  기타가 지닌 많은 가능성을 캐내었다.

  그에 의하여 기타는 멜로디와 화음을 보다 입체적으로
  구사하는 한편, 보다 색감있는 표현도 가능하게
  되었을 뿐더러 왼손의 운지법과 오른손의 탄현법에 개혁을 이룩하였다.

  그의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카프리초 아라베(Capricho arabe)],
 [단자 모라(Danza mora)]는 귀중한 기타의 명곡들이다.

  타레가는 단지 작곡에 그치지 않고 많은 다른 악기를 위한
  곡들을 기타 연주용으로 편곡하여 기타 레퍼터리의 영역을 넓혔다. 

  그 외에도 나폴레온 코스트, 요한 카스파르, 안토니오 카노 등의
  노력으로 기타 음악은 하나의 예술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현대


  19C의 기타역사에서 프란시스코 타레가를 빼놓을 수 없듯이,
  현대의 기타역사에서 안드레스 세고비아(Segovia, Andres)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오늘날 기타를 콘서트홀 무대까지 끌어 올린 현대 기타의 은인이다.
  타레가를 현대 기타음악의 개척자라면 세고비아는 그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

  세고비아는 기타주법-특히 오른손 주법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고
  차원높은 예술성이 담긴 연주로 고전 음악을 소화해
  기타의 가치를 널리 알렸다.

  20C에 들어와 기타음악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세고비아의 업적은
  그의 예술성이 담긴 연주뿐만 아니라 디아즈(Alirio Diaz),
  길리아(Oscar Ghilia), 윌리엄즈(JohnWilliams)등 많은
  제자를 길러낸 점에서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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